2020.02.13 생각

2020.02.13 생각

대충 10년 전 쯤


10년 전쯤의 그 시기에는 생각한 것들을 글로 표현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소설이나 시 같은걸 쓴다고 깝치기도 하고 일러스트같은 걸 그려서 그 옆에 글귀를 적기도 했다. 내 특정 블로그에는 해당 자료가 아직 남아있다. 지금 이 문장을 쓰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왜 그땐 그랬고 지금은 아닌지. 그 어린 시기부터 나는 항상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기위해 노력하면서 지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무언가 마이너스 요소가 있다는 점이 조금은 억울하다. 작문 실력이 줄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뭔가 글을 쓴다는 것에 막연함이 느껴진다.

원인 중 하나는 글쓰기를 어느 시점부터는 하지않았기 때문이겠지. 확실하진 않지만 내 생각을 함부로 공유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렇게 느끼지는 않지만 사람은 무의식의 영역이 훨씬 크다고 하니, 가능성이 있을거같다.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분석해보고싶다. 이 웹을 만든 이유도 사실 이런 글을 쓰고싶어서였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지만, 누군가에게는 보여주고 싶기도 한 내 생각들을 필터링없이 메모하고싶어서말이다.


일기쓰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초등학생 때, 선생님들은 일기쓰는 방법을 잘못 가르쳐준거같다. 그때 당시에 일기라고 하면 ‘오늘 겪은 인상깊은 일’을 쓰는 거라고 배웠기 떄문이다. 생각을 메모하는 방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위에 적은 글에서 나는 글쓰기를 주저하게 된 명확한 원인을 찾지못했다. 10년 전부터 오늘까지 하루도 거르지않고 내가 겪은 ‘현상’만을 일기로 기록했다고 하여도 아마 그 원인을 찾지 못할거라 생각한다. 중요한 건, 살아오면서 생각과 느낌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이다.


영화 퍼스트맨을 또 보았다


내 스스로를 채찍질하고싶을 때 보는 영화가 2개있다. 퍼스트맨, 위플래쉬. 최근에 퍼스트맨을 또 보았다. 닐 암스트롱의 이야기이다. 그는 힘들 때마다 자기 일에 몰두한다. 더 힘든 시련이 오면 더 몰두하며 냉정함을 유지하려한다. 그 사람이 고통을 이겨내는 방식이겠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 신경을 쓰지못한다. ‘선택과 집중’ 중에, 대부분의 선택 사항을 포기하면 집중할 수 있는 것의 폭은 좁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모가 인상깊어 이 영화를 또 보았다.

영화 도입부에서 그의 딸이 죽는다. 영화 중반에는 그의 동료들이 죽는다. 이들의 죽음이 그가 할 수 있는 ‘선택’들과 함께 희생되는 듯이 느껴졌다. 그는 ‘달에 갈 때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연료’라고 대답했지만 이는 마치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인 것처럼 보였다. 사실관계가 불명확한 부분이지만, 그는 달에 도착해서 딸의 팔찌를 남겨놓고 온다. ‘딸을 보고싶은 마음’을 ‘달에 가고싶은 마음’으로 의식적으로 변환하여 살아오다가 결국 목표를 이뤘을 때는 딸이 절실히 떠오른 것이겠지. 누구에게나 아픔은 있다. 그가 아픔을 이겨낸 방식이 초인적인 것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