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목(3)

[소설] 목(3)

목 (3)


문득문득 생각나는 그녀 때문에 가끔씩 웃음이 나온다. 청진기가 그렇게 차가웠었는지 내 팔에 다시 한번 대본다.
거시적인 물리학 관점에서 우주는 사실 빈 공간으로 가득하다고 한다. 심지어 그 빈 공간의 크기도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확장 중이다. 미시적인 물리학 관점에서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되어 있다. 재밌는 점은 원자 안의 빈 공간의 비중이 그 두 요소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우리는 비어있는 것의 비중이 훨씬 큰 세상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내 안의 공허함을 자세히 들여본다. 사실 이것이 없었다면 나는 그녀를 만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맛있는 빵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텅 비어있는 그것이, 그녀를 소중히 생각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셈이다. 퍼즐은 비어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나는 채울 수 있는 의미들이 남들보다 많은 것은 아닐까. 나의 일부분으로 생각하고 이를 수용한다.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출근하는 바람에 오전에 커피를 마실 시간도 없었다. 유독 환자가 많다. 회진과 수술, 외래진료를 하고 나니 벌써 퇴근시간이 되었다. 연구실에서 의료복을 벗고 잠시 앉아서 휴식을 취한다. 내 안의 공허함이 느껴진다. 또 왔구나. 이를 조심스럽게 관찰한다. 잠시 눈을 감고 그녀를 생각한다. 웃음이 나온다. 커피가 생각난다.
1층의 카페로 향했다. 퇴근시간인데 불구하고 손님이 그리 많지 않다. 병원의 유리를 통해 노을빛이 들어온다. 그 노을빛이 ‘Cozy Lazy Cafe’ 카페 간판을 비춘다. 오늘은 카페 이름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느껴진다. 주문대 앞에 서서 주문을 하려고 대기하는 중에 카페 직원이 바뀐 게 보인다. 머릿결은 어깨까지 내려오고 있었고 그 눈빛은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게 하였다. 다시 한번, 신에 의해 이미 설계된 일이 아닐까 상상한다. 커피를 주문하려고 웃으며 말을 건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근데 명찰이 조금 삐뚤어있네요”